유럽 최대의 염수 석호인 스페인 마르 메노르(Mar Menor)는 한때 투명한 바다와 풍부한 해초 초원으로 관광객과 지역 주민의 삶을 지탱하던 지중해의 보석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이 석호는 반복되는 녹조 현상과 대규모 어류 폐사로 ‘녹색 수프’라는 오명을 얻으며 유럽 환경 위기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이제 스페인은 이 붕괴된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복원 실험에 돌입하고 있다.
마르 메노르의 위기는 단기간에 발생한 재난이 아니었다. 무르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집약적 농업은 수십 년 동안 비료와 농약을 대량 사용해 왔고 이 영양염류는 개울과 지하수를 따라 석호로 흘러들었다. 여기에 과거 광산 개발로 남은 중금속,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호텔과 마리나, 도시 하수까지 더해지며 석호는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오염을 떠안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만성적 영양 과잉 상태를 ‘부영양화’로 규정하며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결정적인 붕괴는 2016년에 나타났다. 영양분을 먹이 삼아 폭발적으로 증가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햇빛을 차단하면서 석호 바닥을 덮고 있던 해초 초원의 80% 이상이 사라졌다. 이후 폭우와 홍수 때마다 대량의 인산염이 유입되며 어류와 해마 그리고 연체동물이 집단 폐사하는 사태가 반복됐다. 2021년에도 수면 위로 떠오른 물고기 사체가 장관을 이루자 마르 메노르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환경 재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수만 명의 주민이 거리로 나와 석호 보호를 요구했고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청원에 서명했다. 그 결과 스페인 의회는 마르 메노르에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연 생태계가 독립적인 권리 주체로 인정된 것은 유럽 최초의 사례로 석호가 존재하고 보호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정부 역시 대규모 대응에 나섰다. 약 6억7,500만 유로가 투입되는 ‘마르 메노르 우선 조치 프레임워크’는 단기적인 수질 개선보다 오염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석호 주변에는 폭 1,500미터에 이르는 녹지 완충지대가 조성되고 인공 습지와 복원된 모래언덕이 자연 필터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를 펌핑해 식생을 통과시키는 ‘그린 필터’ 시스템이 가동돼 영양염과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또 다른 핵심 조치는 농업과 수자원 관리의 전환이다. 석호로 유입되던 수로와 운하는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되고 범람원을 조성해 홍수 시 오염물질이 바로 석호로 흘러들지 않도록 한다. 정부는 유기농·재생 농업, 비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도입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대규모 가축 농가를 대상으로 한 오염 저감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시에라 미네라 지역에서는 폐광 주변 재조림과 수로 복원을 통해 중금속이 빗물과 함께 석호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노력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마르 메노르 복원 사업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생태계 복원 플래그십’으로 선정돼 유엔 생태계 복원 10년을 대표하는 사례 중 하나가 됐다. 유엔환경계획은 이 계획을 “유럽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복원 전략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섣부른 낙관을 경계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하수를 통해 유입되는 수은과 메틸수은 등 보이지 않는 오염원이 여전히 석호 생태계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폭우와 해수 온도 상승은 회복 과정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2025년 이후에도 국지적인 저산소 현상이 관측되며 해저 생물들이 산소를 찾아 이동하는 모습이 보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과 환경 활동가들은 이번 접근 방식에 의미를 부여한다. 평생 마르 메노르의 변화를 지켜본 은퇴 교사이자 시민단체 대변인 이사벨 루비오는 “빠른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희망일 수 있다”며 “자연에 기반한 회복만이 이 석호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파괴한 만큼, 회복과 보호 역시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마르 메노르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하다. 완전한 생태적 회복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석호에서 진행 중인 실험은 단순한 지역 복원을 넘어 집약적 농업과 개발로 훼손된 전 세계 연안 생태계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녹색 수프’로 불리던 마르 메노르가 다시 자연의 오아시스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 결과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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