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코리아뉴스는 ‘탄소 이후의 세계,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기후위기와 탈탄소 전환이 우리의 일상과 기업, 그리고 국가 경쟁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짚어보는 기획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회차에서는 최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뚜렷해진 에너지 전략의 대비 속에서, 유럽이 선택한 ‘재생에너지 결집’의 의미를 살펴본다.
트럼프의 ‘풍력 비난’ 5일 뒤… 북해로 모인 9개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풍력발전을 “실패작”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도입하는 국가들을 “멍청하다”고 직격한 지 불과 닷새 만에 유럽 9개국이 대규모 해상풍력 개발에 합의했다.
벨기에·덴마크·프랑스·독일·아일랜드·룩셈부르크·네덜란드·노르웨이·영국은 1월 독일에서 열린 북해 정상회의에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고, 북해를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허브’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총 100기가와트(GW) 규모의 해상풍력을 구축해 약 5천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고전압 해저 케이블로 국가 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것이다. 단일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다국적 전력 인프라를 통합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특정 발언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라기보다, 에너지 안보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유럽의 장기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북해는 얕은 수심과 강한 바람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춘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해상풍력 입지로 평가받는다.
‘러시아 쇼크’ 이후 가속화된 에너지 독립 전략
유럽의 전략 전환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화됐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축소하면서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에너지 요금 인상과 생활비 위기로 이어졌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공백 상당 부분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로 메웠다. 에너지 시장 분석에 따르면 향후 유럽 LNG 수입의 상당 비중이 미국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러시아를 대체하는 안정적 공급원 역할을 했지만, LNG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한계가 있다. 저렴한 파이프라인 가스에서 글로벌 현물시장 중심의 LNG로 전환되면서 실물경제의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전체 에너지의 약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가스전은 지진 문제로 개발이 중단됐고, 북해의 노후 유전·가스전 생산량도 감소세다. 수입 의존 구조는 외부 정치·외교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환경 정책을 넘어 ‘에너지 자립 수단’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미 ‘화석연료 중심’ 회귀… 대서양 동맹의 온도차
트럼프 행정부는 화석연료 확대와 에너지 수출을 외교·안보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해왔다. 관세와 무역 압박이 고조되던 시기, 유럽은 대규모 미국산 석유·가스·원자력 에너지 구매를 약속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글로벌 해운업계의 탄소세 논의에 제동을 걸고, 유럽의 청정에너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과 조치는 대서양 동맹 내 기후·에너지 전략의 온도차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화석연료 중심 전략을 강조할수록, 유럽 내부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안보다”… 유럽의 계산
유럽은 재생에너지를 더 이상 단순한 기후 대응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안보, 산업, 금융을 아우르는 전략적 자산이다.
풍력과 태양광은 이미 EU 전력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몇 년 내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해상풍력은 대규모 단지 조성과 국가 간 전력망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분야로 주목받는다.
북해 프로젝트는 단순한 발전 설비 확충을 넘어, 초국경 전력망 연결을 통해 전력 수급 안정성과 가격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려는 시도다. 이는 유럽 단일 전력시장의 통합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에너지 패러다임 경쟁의 선명화
전문가들은 “미국이 화석연료 중심으로 회귀할수록, 유럽은 오히려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구조적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화석연료는 여전히 글로벌 에너지 체계의 중심이지만, 가격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동반한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초기 투자 비용이 높지만, 연료비가 없고 장기적으로 가격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이번 북해 합의는 단순한 발전 프로젝트가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방향을 둘러싼 전략적 선택을 상징한다.
탄소 이후의 세계는 이미 시작됐다.
에너지 정책은 더 이상 환경부의 의제가 아니다.
그것은 산업 경쟁력, 안보 전략, 그리고 미래 경제 질서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에너지 패러다임 경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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