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인권,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의 균열을 바라보다
가자지구의 하늘을 뒤덮은 폭격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는 분노와 피로, 그리고 무력감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탄이 아닌 ‘시선’의 전쟁, 즉 진실과 인식의 싸움이다.
지난 9월의 뜨거운 금요일 아침, 수십 명의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 국경 장벽으로 향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닌 반전 시위대였다.
“우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포위와 폭격을 멈춰 달라.”
대부분 유대계 이스라엘인인 이들은 국제사회에 이스라엘 제재를 촉구하며 “대량 학살을 중단하고 시오니스트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내자”고 외쳤다.
그들의 외침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극단적 반역’으로 불린다. 그러나 활동가 사피르 슬루즈커 암란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멈추지 않을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라도 전 세계가 우리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말하러 나왔어요.”
이들의 목소리는 극히 소수다. 이스라엘 사회 다수는 여전히 전쟁을 ‘정당한 보복’으로 여긴다. 남부 도시 스데롯에서는 시민들이 매일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가자지구를 바라본다. CNN은 이 장면을 ‘스데롯 영화관’이라 불렀다. 폭격의 장면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이스라엘 시민은 말했다. “그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더 이상 가자지구는 존재해서는 안 돼요.” 이러한 구호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이스라엘인에게 전쟁은 상처이자 신념이 되었다.
인식의 전쟁, 언론과 현실의 간극
이스라엘의 언론은 이 전쟁의 또 다른 전장이다. 에이코드(aChord) 센터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의 62%가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고 믿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여론이 아니라 사실을 제한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구조의 산물이다.
런던대학교의 아얄라 파니에프스키 박사는 “주류 미디어가 팔레스타인인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삭제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주요 방송사 채널 12가 전쟁 첫 6개월 동안 보도한 뉴스 중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다룬 비율은 3%에 불과했다.
결국 이스라엘 내부에서 보도되는 전쟁과 세계가 바라보는 전쟁은 전혀 다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비판적 보도를 시도하는 기자들은 살해 협박과 사회적 압력에 시달린다.
이스라엘의 대표 일간지 하레츠(Haaretz)의 기자 니르 하손은 “가자지구의 참상을 보도할 때마다 협박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성이 급격히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가자지구의 기근과 참상은 국제사회에서는 매일 보도되지만, 이스라엘 내에서는 종종 ‘팔리우드(Pallywood)’, 즉 ‘팔레스타인’과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조롱받는다. “그들의 고통은 연출된 것이다”라는 부정의 언어가 일상화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DI)의 조사에 따르면, 유대인 응답자의 79%가 ‘가자지구의 기근 보도에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물리적 장벽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전 의장이자 작가인 아브라함 버그는 말했다. “우리는 분리 장벽을 세웠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니, 당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이제는 정치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고 말하며 “지금의 이스라엘은 균형이 사라진 사회”라고 진단했다.“이제는 중도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극단적인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할 때”라고 그는 덧붙였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 공감과 진실
전쟁은 언제나 이분법을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 정의와 복수, 생존과 응징. 하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공감’이다. 이스라엘 내부의 반전 시위대들은 국제적 고립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책임자입니다. 그래서 멈춰야 합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일 수 있지만, 인권은 그 어떤 정치보다 앞선 가치다. 가자지구의 참상과 이스라엘 사회의 분열은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디까지 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을 수 있는가?” 그 답은 폭격이 멈춘 후에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다.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것”
그것이 전쟁 속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소한의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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