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사막 위로 기하학적인 패턴이 끝없이 펼쳐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규칙적으로 늘어선 태양광 패널들임을 알 수 있다. 제다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건조한 대지 위에 자리한 알 슈아이바 2(Al Shuaibah 2) 태양광 단지는 2GW 규모의 전력을 생산해 약 35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태양광 발전 시설이다.
그러나 이 기록도 머지않아 새로운 프로젝트들에 자리를 내어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전역에서 이보다 더 대규모의 태양광 단지들이 잇따라 추진되며, 나라 전체가 화석연료 중심에서 청정 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의 풍경은 이제 단순한 모래 언덕을 넘어, 미래 에너지로 향하는 거대한 변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리서치 기업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재생에너지 분석가 니샨트 쿠마르는 “사우디에서 태양광 붐이 일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거의 0%에 가까웠던 이 나라는 2030년까지 전력의 절반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초고속으로 설비를 확충하고 있다.
석유 대국의 ‘이례적’ 전환… 그러나 이유는 명확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자리해 왔다. 국제 기후 협상에서는 화석 연료 감축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대표적인 ‘기후 저항국’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가 왜 지금 청정에너지에 거대한 투자를 쏟아붓고 있을까?
전문가들이 꼽는 핵심 이유는 경제성이다.
태양광 패널 가격이 중국산 제품의 공급 확대로 급락한 데 더해 사우디는 햇빛·부지·전력망 비용 등 모든 면에서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컬럼비아대 에너지정책센터의 캐런 영은 “태양광은 사우디에서 가장 비용 효율적인 전원”이라고 평가한다.
또 다른 이유는 ‘수출 가능한 석유의 확보’이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국내 전력 생산에 석유를 사용해 왔는데 이를 대체하면 더 많은 원유를 해외 시장에 팔 수 있다. 라이스타드의 분석가 압둘라 알카탄은 “국내 전력 생산에 석유를 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는 경제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제로’에서 2030년 ‘초대형 시장’으로
2020년까지 사우디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말이면 태양광 설비 용량이 12GW에 달할 전망이며 2025년에는 신규 태양광 설치 기준 세계 10대 시장에 처음 진입했다.
국영 전력 회사 ACWA 파워와 사우디 아람코 등 국내 대기업도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태양광 중심의 15GW 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에 83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발표했다.
라이스타드는 사우디의 태양광 설비가 2030년대 말 70GW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육상 풍력 발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확장은 5,000억 달러 규모의 미래형 도시 NEOM, 홍해 관광 프로젝트 등 초대형 국가 사업과도 연결된다. 이들 프로젝트는 대부분 청정 에너지 기반의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한다.
빠르긴 하지만… 목표 달성은 미지수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기후 행동 분석기관 CAT(Climate Action Tracker)은 사우디의 기후 정책을 “심각하게 불충분”하다고 평가한다.
CAT의 분석가 아나 미시를류는 2024년 말 기준 사우디전력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현재 속도만으로는 2030년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라이스타드는 사우디가 2030년까지 전력의 3분의 1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으며, 50% 목표는 “몇 년 뒤에는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단지 목표 달성 여부를 넘어 석유 국가인 사우디가 대규모 재생에너지에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미시를류는 “석유 대국조차 재생에너지 시대가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극명한 대비…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청정 에너지 경쟁’
흥미롭게도 사우디의 행보는 현재 미국의 정책 방향과 대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우위(Energy Dominance)” 전략 아래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억제하며 화석 연료 중심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컬럼비아대 영 교수는 “사우디가 미국보다 오히려 청정 기술과 재생에너지에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는 태양광 제조·배터리 저장장치·전기차 생산 등 국내 공급망 구축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사우디만의 현상도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심지어 이란까지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태양광 굴기 속에서도 여전히 석유 국가
그럼에도 사우디는 기본적으로 석유 기반 경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향후 전력의 50%는 여전히 천연가스로 충당할 계획이며 전력 수요 급증으로 인해 태양광 확대가 곧바로 화석연료 사용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사우디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는 여전히 석유 중심 접근법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해운업의 기후 오염 규제 논의에서 미국과 함께 세금 부과를 무산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COP30에서도 국제사회는 사우디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우디가 과거와 달리 기후 협상에서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 전례 없는 속도로 청정에너지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 아직 한계와 모순도 존재하지만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이 태양광 발전 확대에 앞장선다는 사실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을 강하게 시사한다.
석유 시대의 상징이던 중동 사막에서 이제는 거대한 태양광 패널이 미래를 비추고 있다.
BEST 뉴스
-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이 대통령 “공소청·중수청 출범, 새 형사사법체제 시작”…경찰개혁도 주문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새로운 형사사법체제의 안정적인 정착을 주문했다.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경찰에 대해서는 외부 통제와 내부... -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16일 첫 한·중앙아 정상회의
▲이재명 대통령,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연쇄 회담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잇달아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공급망과 인프라, 시장 확대를 비롯한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나선다. 오는 16일에는 5개국 정상이 함께하는 첫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
농지 전수조사에 커진 불안…정부 “투기와 농촌의 현실 구분하겠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지 전수 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 [사진=농림수산식품부]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 농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고령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이웃... -
경기도, 장애인 자립지원주택에 ‘AI 자립비서’ 도입…안전·건강·일상생활 지원
▲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AI와 IoT를 활용해 안전·건강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AI 자립비서’ 사업을 10월부터 12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사진=경기도] 경기도가 자립지원주택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안전을 돕기 위해 인공지능(AI)과 ... -
사라지는 로힝야족의 마을, 폭력 피해 떠났지만 돌아갈 땅마저 잃는다
▲ UNHCR이 2026년 6월 공개한 콕스바자르 난민촌 항공사진 [사진=UNHCR] 미얀마에서 수십 년간 박해와 강제이주를 겪어온 로힝야족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살던 마을과 토지까지 사라지면서 향후 귀환할 수 있는 삶의 기반 ... -
우주에서 포착한 사우디 사막…모래언덕이 그려낸 ‘지구의 예술’
▲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 [사진=Jessica Meir x]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능선이 굽이치고, 능선을 따라 생긴 그림자가 대지 위에 독특한 무늬를 만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내려다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풍경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추천뉴스
사람들
more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내가 맡긴 돈은 어디로 갈까”…이상진 대표가 그리는 가치금융의 미래
[편집자 주] 세상의 변화는 익숙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로... -
인류의 달 착륙 뒤에 있었던 여성 과학자…마거릿 해밀턴, 90세로 별세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보이지 ... -
오바마 “책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인생 바꾼 6권 다시 읽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들을 다시 펼친다... -
UN 인권사무소, 말리 원주민 지도자 우무 디코 조명… “기후 정의와 원주민 권리 향상에 앞장”
유엔 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가 7일 저녁 공식 X 계정을 통해 말리 출...
오피니언
more +-
[강윤영의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② 불안의 시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만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 -
[이경미의 AI와 미래공간 ①] AI가 바꾸는 공간, 인간의 삶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공지능(AI)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는 풍경은 이... -
[용석광의 컴플라이언스와 ESG] ㉜ CP 우수기업 인센티브 체계와 과징금 감경 규정: 준법경영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재무적·행정적 혜택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상징적 포상이... -
[서정태의 ESG현장클리닉④] 중소기업의 공급망 ESG 평가대응, ESG 대응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최근 ESG는 대기업이나 상장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해외 바이어와 대기...
기획 / 탐방
more +-
[ESG탐방] 농업 생산지가 관광 자원으로… 홋카이도 ‘패치워크 로드’와 ‘팜 토미타’가 보여준 농촌 경관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와 나카후라노의 ‘팜 토미... -
[ESG탐방] 화산 지질이 만든 지하수의 흐름… 비에이 ‘시로가네 폭포’가 보여준 자연자산의 가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의 시로가네 온천 지역에는 화산 지질과 지하수가 ... -
[ESG탐방] 방재시설에서 관광자원으로... 자연과 함께 만들어진 홋카이도 비에이 ‘청의 호수’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정에 위치한 청의 호수(아오이이케·青い池)는 처... -
[ESG탐방] 아사히카와 디자인센터, 지역 산업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연결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는 가구와 목공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홋카이도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