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쉬굴리에서 ‘샤자’와 ‘까미’의 빙하 트레킹
쉬카라 빙하 트래킹을 나선다. 우쉬굴리에 온 목적 중에 하나다. 설산-빙하 입구까지 걸어서 3시간 걸린다. 말과 차량으로 가는 건 5월 중~하순부터 가능하다.
아침에 도시락을 만들어 오전 10시에 트래킹에 나선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덩치가 곰처럼 큰 개 한 마리와 검정개가 우리한테 달려든다. 곧 다리에 본드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큰놈은 덩치가 족보 있는 사자처럼 생겼다. 이놈은 온 마을과 산길을 장악하여 지역 사령관 노릇을 한다.
길을 걷는데 성가실 정도로 먹을 것을 달라고 계속 시위를 한다. 몸이 큰놈은 수컷, 작은놈은 암컷이다. 이 커플은 우리를 쫓아오면서 배낭 속에 있는 빵 내놓으라고, 같이 나눠 먹자고 시나브로 눈치를 준다.
내 짝꿍은 전날 밤 빵을 많이 사둬서 개들한테 나눠주려고 준비한 터였다. 우리는 빵을 각각 나눠줬지만 어림도 없다. 이들은 더 달라고 아우성치며 우리와 함께 트래킹에 동반할 기세다. 우리도 쉬카라 빙하에 처음 가는 길이라 길을 모르고 허전하던 차에 개들과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전문 트래킹족처럼 앞장서서 길 안내를 자청한다. 이들의 솜씨를 보니 많이 해 본 솜씨다. 덕분에 마음이 안정된다.
아 참! 김춘수 시인한테 욕먹을 짓을 한다. 얘네들한테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험한 길을 고맙게도 가이드 해주는 데 성명이 없다니, 이건 아니지 싶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사람이 개한테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된다. 우리는 개들한테 말로 된 명찰을 달아준다. '샤자'와 '까미'.
'샤자'는 먹성이 아귀이고 덩치가 산 만큼 큰놈이라 원래 사자로 태어나려고 예약돼 있었다. 조상의 유전자가 개하고 피가 잘못 섞여 재수 없게 사자에서 개로 태어났다. 한마디로 개 피를 본거다. 얘는 비록 개 팔자가 됐지만 떡대가 커 사자로 불리어도 진짜 사자한테 전혀 꿀릴 것 없다.
나의 깐부 샤자가 사자하고 맞짱 뜨면 난 샤자한테 백만 원 건다. 그래서 비록 외모는 개지만 정체성과 '와꾸'가 사자 못지 않아 '샤자'라고 이름 짓는다. 며칠 살펴보니 우쉬굴리에서 지역사령관 역할을 하는 우리 샤자의 영향력은 그런대로 괜찮다. 또 한 놈, 몸피가 호리호리하고 피부가 검은 놈한테 '까미"라고 부른다.
샤자는 동네 개들을 휘어잡는 왕초다. 까미는 영리해서 샤자한테 샤방샤방 뿜뿜을 날리며 친구 먹은 지 오래고 연인, 아니 '연견' 사이로 발전한다. 까미는 원님 덕에 나팔 분다. 까미가 호가호위를 남발하는 낌새다. 샤자라는 권력 견 옆에서 잘 먹고 잘 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비틀어 샤자와 까미에게 바친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땐 그들은 은혜받아 거듭난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들은 다만 두 개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이들은 나에게로 와서 '샤자와 까미'가 되었다."
샤자와 까미는 영화 라라의 테마곡 장면처럼 눈밭에서 뒹군다. 오랜만에 소풍 와서 좋은가 보다. 샤자는 사자처럼 컹컹 포효하며 친구 까미와 잘도 논다. 이들은 연인, 아니 연견이다. 서로 마주 보는 표정이 그윽하다. 먹을 거 있어도 다른 개들처럼 으르릉거리지 않는다.
샤자는 암컷 까미가 먹이를 잘 먹을 수 있도록 관망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기특하다. 사람의 인륜지대사가 아니라 견륜지대사에 개입하면 아니 된다. 사람은 사람, 개는 개다. 한편, 이들한테 먹을 것을 안 주면 삐져서 집으로 갈 거 같아 20분마다 빵을 뜯어준다. 가이드를 잃는 건 우리한테도 타격일 수 있으니...
쉬카라 빙하로 가는 길은 저 멀리 광대한 설산을 정면으로 둔 화면 같다. 길을 걸을수록 소실점이 부풀어 오른다. 설산에 가까이 갈수록 부피는 커지고 무게는 무겁다. 길 오른쪽은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왼쪽은 눈이 산에서 녹아 흘러 진흙탕 길이다.
비탈진 산에 소들이 위태로워도 기어코 풀을 뜯는다. 급격하게 경사진 산비탈에서 먹는 행위는 몸을 살리는 일이지만 한편으로 보험에 들지 않아 굴러떨어질 위험에 속수무책이다. 그래도 소들은 초록을 탐하지 않을 수 없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처럼 이들도 먹어야 산다.
아직 봄이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아 풀은 별로 없다. 그럴수록 소들은 용케도 균형을 유지하며 올라온 연두를 흡입하기 바쁘다. 어쩌다가 양과 염소 한두 마리도 초원이라는 위험한 '식당'에서 밥 먹기 바쁘다. 동물과 식물이 활활 대는 봄, 자연은 바쁘게 움직인다.
한 시간 반을 걷는다. 갑자기 길에 눈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눈이 바리게이트를 쳤다. 설산이 '열받아' 흘러내린 눈이다. 우쉬굴리는 4월 말에도 트레킹 길이 열리지 않는다. 5월 중순이 돼야 갈 수 있다는 현지인 말은 맞다.
발이 눈 속에 푹푹 꺼진다. 다리가 눈에 푹 꺼져 자꾸 가라앉는다. 짝꿍과 나는 어떻게든 눈길을 뚫고 가려고 애를 쓰지만 50미터도 못가 되돌아온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하듯이 우리도 회군한다.
엄청난 눈길을 뚫고 가기엔 우리의 장비와 신발이 부실하다. 우리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쉬카라 설산 방향으로 이어진 눈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되돌아서는 우리들의 모습에 샤자와 까미도 서운한 눈치다. 수고했다고 또 빵을 던졌다.
우리도 강가에 않아 도시락을 먹었다. 조지아 여행은 우쉬굴리에 온 사람과 안 온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지역은 어디 가서도 보기 드문 중세 마을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야생화 만발한 쉬카라 빙하길을 걷는 매력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눈 때문에 쉬카라 트래킹을 중도에 포기한 게 억울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쿠라강을 흘려보내며 숙소로 향햇다. 샤자와 까미도 우리를 따라 집으로 안내했다. 싼 맛에 가이드 둘을 고용한 우쉬굴리 여행은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샤자야, 까미야! 내년에 또 만나자. 그때도 우릴 가이드 해 줄거지?
덧붙이는글: 황 현 호
현재 문화발전소 소장으로 있으며, 제주 애월 프롬나드의 주인장이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제주 애월에 거주하며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경기북부참여연대 편집국장, 의정부예술의전당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제주에서 환경운동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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