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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여순사건 피해자 국가배상소송 항소 포기

  • 김지원 기자
  • 입력 2025.10.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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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4·3사건과 함께 국가 권력에 의한 집단 인권침해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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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여순사건 피해자 국가배상소송 항소 포기 [사진=법무부]

 

해방 직후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꼽히는 여순(여수·순천)사건 피해자들이 국가의 항소 포기 결정으로 권리 회복의 길을 열게 됐다. 

 

법무부가 여수·순천 10·19사건 피해자 150명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 2건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대한청소년개척단 사건 등에 이어 또다시 국가가 상소를 포기한 결정으로,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앞당기려는 의지가 반영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발생했다. 이들은 “양민 학살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반발했고, 곧 순천과 지리산 일대까지 무력 충돌이 확산됐다. 

 

국가의 대규모 진압 작전이 이어지면서 1955년 4월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특히 여순사건의 발단이 된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행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제주 북국민학교(현 북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군중과 경찰 사이 충돌이 벌어졌고, 경찰이 발포해 민간인 6명이 사망,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며 경찰·관공서와 서북청년단의 가혹 행위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고, 결국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본격화됐다. 제주4·3사건은 1954년 9월 한라산 통행금지 해제까지 이어지며 약 3만 명의 민간인 희생을 낳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여순사건은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적·정치적 혼란기에 국가 권력이 저지른 집단적·조직적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사회적 편견 속에서 오랜 세월 고통받아 온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국가 불법행위 피해자들이 제기한 배상소송에서 관행적 상소를 자제하고,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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